예금보험공사 직원들의 사연을 소개하는 특별한 코너 '함께 만드는 예보광장'.
이번 호에는 직원들의 반려 동·식물이야기부터 영화, 책을 읽고 느낀 소회, 최애 맛집 추천 글을 담아보았습니다. 공감과 재미가 가득한 사연을 통해 예보 직원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어 보세요. 서로의 생각과 이야기를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예보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문학·예술과 관련된 예보인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평식이 형(박평식 평론가를 칭하는 인터넷 밈)이 9점 준 영화.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였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는 정보만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갔고, 후에 영화 제목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및 그 주변 지역을 뜻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제목과 소재에서 오는 중압과는 달리, 카메라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인 루돌프 회스와 그 가족의 일상을 관찰하듯 비춘다. 소장의 집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수용소와 나뉘어져 있으며, 이는 마치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면서도 분리된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벽 뒤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을 참상은, 굴뚝에서 뿜어내는 연기를 제외한다면 결코 시각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영화 내내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과 총성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것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리고 소장 가족에게 그 소리란, 아무런 관심이나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지 못하는 무의미한 소음과도 같다.
보여주지 않아 더더욱 보이는 것 같고, 소리만으로도 구토감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특히 암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엔딩곡에는, 서서히 잠식되어 압도당하는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평식이 형은 9점을, 동진이 형(이동진 평론가)은 10점을 준 영화. 이들의 이름을 감히 빌려, 이 영화를 추천한다.
현대의 화폐 창조 원리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 책을 마주치게 되었다. 저자는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 공개시장운영 트레이더로 일했던 조셉 왕(Joseph Wang)이며, 웹사이트(fedguy.com)도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한국의 경제지와 최근에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그 영상에서는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다.
현대 중앙은행의 작동 방식에 대한 자료들은 인터넷에 산재해 있는데, 뉴욕 연준에서 직접 일한 저자가 쓴 이 책을 통해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다. 대출이 예금을 만든다는 현대 예금의 속성(“흔히 은행이 예금을 받은 다음 다른 사람에게 예금을 빌려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은행은 대출을 제공할 때, 기존 예금에서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새로운 은행예금을 만든다.”(p. 30))에서부터, 화폐의 종류, 돈을 만드는 자들, 그림자 은행, 유로달러 마켓, 금리, 단기금융시장, 자본시장, 위기통화정책, 연준 감시법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토막글 ‘패시브 투자의 부상’에서는 놀랍게도 가치투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데, 가치주들은 주로 소규모 기업이어서 비중이 매우 커져 버린 패시브 자금의 수혜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실무적인 내용도 나온다. 경제와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은 7가지 이야기가 담긴 SF 단편소설집이다. 우주항공기술, 생화학, 데이터분석 등 기술이 고도로 발전된 세상이 온다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적절한 대화, 소재, 장면으로 몰입감 있게 구성하여 이야기 속 세계와 인물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것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혈액과 체액을 대체하는 물질을 연구한 끝에 냉동수면 기술을 완성한 한 과학자의 이야기, 글이 아닌 그림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등 색채로 의사소통하는 외계 행성 이야기는 ‘항공우주’나 ‘유전자 조작’ 같은 소재에만 익숙한 내게 신선한 소재로 다가왔다.
7가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관내분실’이라는 제목의 이야기였다. 죽은 사람의 뇌를 스캔하여 도서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할 수 있게 된 세상에서, 뒤늦게 죽은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된 딸에 대한 이야기였다. 설정이 독특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시냅스 연결 패턴 데이터’가 도서관 데이터베이스 어딘가에는 존재하지만, 그 위치값을 가리킬 ‘인덱스’가 삭제되어 어머니가 실종돼버렸다는 설정이었다. 도서관 직원은 어머니의 데이터를 찾기 위한 인덱스를 대체하려면 기술적으로 단순한 검색어가 아닌 어머니의 특정한 사고나 행동 패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유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연을 끊고 살았던 주인공은 어머니를 식별할 수 있는 유품을 찾고자 그제야 호기심을 품고, 어머니의 삶을 ‘이해’해 보고자 한다. 본인을 낳기 전 어떤 일을 하셨는지, 왜 우울증에 걸렸을지 등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고, 어머니의 삶과 그 결과 어머니가 자신에게 했던 서툰 행동과 표현들을 차츰 이해해 나간다. 열린 결말이었지만, 작가의 이야기 전개 방식과 시선이 아름다웠고, 나 또한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스스로 더 깊이 질문할 수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였다. ‘SF’라기보다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재밌었지만, 각 이야기의 결말이 힘없이 끝나는 점은 아쉬웠다. 개별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지 작가만의 독창적인 전개를 더 보고 싶었지만, ‘이제부터 재밌어지겠다’라고 느낄 때쯤 이야기가 뚝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는 ‘소설 속 살아있는 인물들’ 또는 그 인물들의 삶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독자’가 스스로 뒷이야기를 이어가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느 SF 소설이 그렇듯, 이 책 또한 ‘SF’라는 장르를 활용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타심은 어디서 오는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같은 ‘철학 질문’을 던지고 있고, 그 답을 찾는 것은 결국 본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도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초엽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통해서 이해의 경계를 부수고, 단절된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저자의 이런 마음이 잘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들이 담긴 책이었다. SF소설이지만 설정과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휴가철에도 부담 없이 틈틈이 딱 읽기 좋은 책이라 누구에게나 추천한다.
“탐구하고 천착하는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이해해보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 어디서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싶다. 앞으로 소설을 계속 써나가며 그 이해의 단편들을, 맞부딪히는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찾아보려고 한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