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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 30주년 Re:member history
예금보험공사의 흔적을 찾아서

예금보험공사 창립 30주년을 앞두고, 예보의 전·현직 임직원들이 특별한 여정에 나섰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예금보험공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동안 걸어온 역사적 순간과 선배들의 생생한 후일담을 되짚는 시간이었다. 서울과 춘천에서 만난 예보의 기억, 그리고 5개의 전·현직 임직원 팀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았다. 이번 여정은 예보의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전·현직 임직원의 땀과 열정을 기억하고, 조직의 역사와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그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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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타이틀

서울의 시간 속
예보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지난 시간 속 예금보험공사의 흔적을 찾는 여행의 첫 번째 출발지는 바로 서울이다. 예보의 첫 사무실이 자리했던 삼성동 태원빌딩부터 장충동 파산재단, 예보의 대표적 회수 사례로 남은 단성사 그리고 현재 예보가 위치한 청계천로 30까지. 예보의 결정적 순간들을 톺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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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의 시작,
삼성동 태원빌딩

홍보실 권하연 책임역, 기금정책부 최수진 계장, 금융계약자교육실 최예환 계장, 홍보실 이준희 영상홍보역이 첫 시간 여행지로 찾은 곳은 예보의 출발점인 태원빌딩이다. 1996년 6월 1일 창립멤버 44명이 새 기관의 기틀을 다졌고, 1999년까지 약 200명이 근무하며 예보의 성장기를 함께했던 장소다. 등기부등본을 토대로 옛 주소(삼성동 143-40)를 확인해 방문했으나, 현재는 ‘위워크(WeWork)’ 공유오피스로 사용되고 있어 내부 출입은 어려웠다. 대신 홍보실 이지현 실장의 회고를 떠올리며 당시 모습을 상상해보았고, 직원들이 점심시간마다 즐겨 걸었다는 선릉과 정릉을 함께 찾았다. 태원빌딩 창으로 내려다보이던 사계절의 풍경—벚꽃, 푸른 숲, 단풍, 흰 눈—은 당시 직원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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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 파산재단 그리고 만남

다음으로 찾은 곳은 동호로 242의 장충동 파산재단으로 현재 생활금융교육팀과 함께 19개 파산재단이 이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간단히 업무 현황을 확인한 뒤 팀은 주변 식당에서 오찬을 겸해 태원빌딩 시절의 생생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식사 자리에는 프라임저축은행·한맥투자증권 파산재단 관재인인 권남진 부장도 함께해, 수기로 시간외 근무를 기록하던 시절, 당직 근무 분위기, 태원빌딩 지하식당의 추억 등을 들려주며 예보 초창기 일상을 실감나게 전했다.
권하연 책임역과 최수진·최예환 계장은 같은 장소를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예보 업무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는지 떠올렸고,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예보의 역할과 책임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다시금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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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단 협상과 소송을 거쳐 매각까지,
단성사 채권 회수 이야기

서울 여정의 가장 극적인 장면은 단성사로 이어졌다. 1907년 공연장으로 개관한 단성사는 〈의리적구투〉, 〈장화홍련전〉, 〈아리랑〉, 최초의 유성영화 〈춘향전〉 등 한국 영화사의 주요 작품이 상영된 역사적 공간이자 종로3가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멀티플렉스 개관과 분양 부진이 겹치며 2008년 부도 처리되었고, 2009년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11개 저축은행에서 607억 원을 대출받으며 위험이 커졌다. 2011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다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자 단성사 관련 채권 447억 원이 파산절차로 넘어가 예보가 회수 업무를 맡게 되었다. 2013년 7월부터 8개월간 9차례 협의했으나 단성사와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매각 금지 가처분 소송까지 제기되었으나, 약 8개월 뒤 채권단 승소로 회수 절차가 재개되었다. 네 차례 유찰 끝에 2015년 3월 12일 단성사는 575억 원에 매각되었고, 예보는 선량한 수분양자 보호와 부실자산 회수라는 공적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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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로 30, 예보의 현재까지

마지막 여정은 예보의 현재 터전인 청계천로 30의 과거로 이어졌다. 청계천박물관을 방문한 팀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청계고가차도 시절을 거쳐 지금의 복원된 청계천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청계천 복원 이전에는 고가도로(청계고가차도)가 지나가 지금의 주차장 위치가 정문이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예보가 위치했던 당시 건물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지만, 삼일고가도로 자료를 통해 그 시절 도심에 놓여 있던 거대한 구조물과 철거 후 이어진 교통난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예보가 터를 잡고 업무를 이어가는 장소는 도시 변화를 견디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했지만, 그 속에는 예보가 지나온 시간의 깊은 결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예보의 시작과 오늘을 잇는 길 위에서, 기관의 존재 이유와 앞으로의 역할을 다시 떠올려보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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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타이틀

예보의 첫 파산종결재단,
석사신협을 아시나요?

낭만과 추억이 깃든 도시, 춘천. 두 번째 시간 여정의 목적지는 바로 예금보험공사가 최초로 파산종결을 이뤄낸 상징적 사례인 ‘석사신협(춘천)’이다. 파산법 절차가 정비되기 전, 예보의 소중한 결실로 남은 ‘처음’의 순간을 만났다.

(구)석사신협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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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 예보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장소가 있다?

보기만 해도 익숙한 멜로디가 떠오르는 춘천 소양강. 이른 아침 ITX-청춘 열차로 도착한 이는 준법경영실 조민서 주임, IT운영부 임종성 선임조사역, 금투리스크관리부 추승엽 선임조사역, 홍보실 문지은 선임조사역이다. 석사신협과 예보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이후 예보는 다수의 부실 금융회사에 공적 자금을 투입했지만 당시 파산법 체계에서는 최대 채권자로 참여하는 것 외에 적극적 회수 권한이 부족해, 회수되지 못한 자금이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예보는 감사위원제도와 자산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파산재단 절차에 능동적으로 개입할 기반을 마련했다. 1999년 법 개정 이후 파산관리인 제도와의 협력이 강화되며 자산 점검과 관리 체계가 정비되었고, 이는 이후 ‘석사신협’과 같은 본격적인 파산 종결 사례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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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신협 현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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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적으로만 남은
석사신협 그리고 동부시장

동부시장은 1969년부터 춘천시 동부 팔호광장에서 중앙로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한 유서 깊은 시장으로, 초입에 위치했던 석사신협은 사라진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인들의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을 만큼 익숙한 장소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경기 침체의 여파는 석사신협도 비켜가지 못했고, 결국 1999년 1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당시 예금보험공사는 여러 파산재단의 정리를 맡고 있었으며 석사신협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석사신협은 파산 선고 후 2년 만에 금융구조조정 이후 최초로 파산절차 종결 선고를 받는 사례가 되었다. 예보는 파산재단이 자산 처분에 적극 나선 결과 잔여 자산이 크게 줄고, 조만간 파산 비용이 회수액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돼 조기 종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예보 역사상 처음으로 ‘끝맺은’ 파산재단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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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발로 뛰며
쌓아 올린 회수업무의 초석

‘파산 종결’이라는 짧은 단어 뒤에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직원들의 노력이 있었다. 예보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 시행 직후로 최대 채권자를 넘어 직접 파산관재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제도 변화가 곧 업무의 수월함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2001년 무렵은 지금처럼 파산법 절차가 정비되기 전이라 직원들은 채권액을 손으로 계산하고 필요한 법 조항을 일일이 필기하며 익혔다. 안전경영실 박상희 팀장(당시 청산회수부)은 야근과 출장이 일상이던 시절을 선명히 기억했으며, 그 당시 청산회수부 직원들은 전국 지방법원을 쉼 없이 다녔다. 다만 빠듯한 일정 탓에 지역 맛집은커녕 기차역에서 끼니를 해결했다는 웃픈 후일담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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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정의 끝에서
회수 역사의 의미를 돌아보다

이제 네 사람의 발걸음은 다시 소양강으로 향한다. ‘석사신협 파산종결’은 특별법 시행 이후 예보가 파산관재인으로 참여한 재단 가운데 가장 먼저 종결된 사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공적자금 회수를 완수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으며 이후 부실 금융회사 정리의 출발점이 됐다. 당시 언론 역시 이 사례를 통해 공적자금 회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20년의 시간이 흐르며 예보의 파산재단 운영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파산관재인 제도가 정착되면서 회수 절차는 보다 체계적으로 정비됐고, 현재는 파산절차 조기종결 제도를 통해 효율적인 재단 운영이 이뤄지고 있다. 파산 후 일정 기간이 지나 자산 환가가 정체된 재단을 조기종결 대상으로 선정하고, 법원의 허가를 거쳐 자산 평가와 매각, 최종 배당을 진행한 뒤 종결선고를 받는 방식이다.
한때 빈 건물만 남아 있던 그 자리에서, 이제는 공사가 걸어온 회수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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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History 연수소감

1. 농협중앙회 기금 이관 사건 경험 공유
저축은행리스크관리부 김재영 부장, 내부통제부 한성주 팀장, 금융계약자교육실 박성진 팀장, 기획조정부 인효상 차장은 농협중앙회 기금이 예보기금으로 이관되던 당시의 주요 사건을 되짚으며 핵심 경험을 공유했다. 참석자들은 기금관리자로서 기본 절차를 충실히 이행한 태도가 1,400억 원 회수라는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졌음을 다시 확인했다. 선배들은 후배들과 경험을 나눌 수 있어 뜻깊었다고 밝혔으며, 후배들은 당시의 협업과 판단 과정을 통해 현재의 업무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소회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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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산저축은행 본점터 방문
SIFI정리부 하제영 책임역, 금융계약자교육실 맹근영 책임역, 예금보호정책부 김아라 선임조사역, 인사지원부 이수진 계장, 성과경영실 윤민희 계장은 부산저축은행 본점터를 방문해 저축은행 사태 현장을 직접 확인했다. 참가자들은 문서로만 접하던 사건의 실제 모습을 보며 당시 예보가 수행한 역할과 결정의 무게를 생생히 체감했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상황과 대응 과정을 인터뷰로 들으며 위기 대응 업무가 국민 보호와 직결된다는 점을 다시 인식하는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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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산저축은행·해솔저축은행 소재지 현장방문
감사실 신창하 실장, 재무관리부 최지만 부장, SIFI정리부 장진모 팀장은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경험을 후배들과 공유했다. 저축은행리스크관리부 한동완 수석책임역, 금융회사경영지원부 문재곤 차장은 최근 PF 부실 확대 등 업권 침체 속에서 과거 사례를 되짚으며 현재의 리스크 관리에 필요한 시사점을 얻었다고 전했다. 선후배 모두에게 저축은행 정리 경험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고민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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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서울보증 MOU 담당자 교류
보험리스크관리부 고효진 차장은 서울보증보험과의 MOU 추진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협업 경험을 공유하며 약 15년에 걸친 업무 흐름을 정리했다. 참석자들은 실무 협조는 대체로 원활했으나, 주요 자료 제공이 늦거나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관행은 여전히 개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효진 차장은 이번 교류가 현 담당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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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인시장 방문 및 상인회 간담회
재무관리부 권민제 차장, 금융정리부 민지영 선임조사역, 채권관리부 오정민 책임역, 인사지원부 정찬민 책임역은 통인시장을 방문해 전통시장 지원, 도시락카페 엽전 제작, 생활금융교육 등 과거 ‘행복예감’ 활동의 성과를 공유했다. 참석자들은 통인시장 지원이 지역 상권 활성화로 이어진 긍정적 효과를 다시 확인했으며, 향후 지속적 상생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30주년을 계기로 과거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재추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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