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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리스크와 금융안정

전선애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예금보험공사 객원연구위원

산업화 이전(1850~1900년)과 비교해 최근 10년간 지구 평균기온은 약 1.1°C 상승하였으며(IPCC, 2023)1), 이에 따른 지구 온난화는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및 극한 자연재해의 발생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 추세는 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금융시장과 금융안정에도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물리적 리스크(physical risk)와 전이 리스크(transition risk)는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주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물리적 리스크란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으로 발생하는 직접적인 피해를 수반하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금융회사는 이러한 물리적 리스크에 직접·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은 자연재해로 인해 가계와 기업 부문에 피해가 발생할 경우, 대출 부실로 인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으며, 담보자산 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추가 충당금이 요구될 수 있다. 보험사의 경우, 자연재해로 인한 보험금 지급이 급증하면 보험 부문의 부채가 예상을 초과하거나 재보험 비용이 상승하여 재무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이 증가함에 따라, 고위험 지역에서는 보험료가 급등하거나 보험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물리적 리스크는 과거 통계를 기반으로 한 분산투자 전략의 유효성을 악화시키며, 나아가 다수의 금융회사가 동시에 대규모 재해에 노출될 경우, 신용경색으로 인한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형 전력회사인 PG&E(Pacific Gas & Electric Corp)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으로 산불위험이 급증하면서 막대한 손해배상 부채를 떠안고 결국 파산하였다. 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첫 기업 파산 사례”로 언급되면서 금융시장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서도 2022년 태풍 힌남노로 인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여 약 7,800억원의 복구비용이 투입되는 등 기후변화로 인한 자산 피해와 보험금 지급 증가가 현실화되고 있다. 1) IPCC (2023), Climate Change 2023: Synthesis Report,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전이 리스크(transition risk)란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 과정에서 정책, 기술, 소비자 행태 등의 변화로 인해 금융자산의 가치가 영향을 받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탄소세 도입, 온실가스 배출규제 강화와 같은 정부의 기후정책, 저탄소 기술의 발전과 보급, 소비자 및 투자자의 친환경 선호 확산 등은 기존 탄소 집약적 산업의 사업환경을 급격히 변화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이나 기업의 미래 수익 전망이 악화되고, 관련 자산의 가치가 하락함에 따라 금융회사가 보유한 대출 및 투자 자산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영란은행 전 총재 마크 카니(Mark Carney)는 화석연료 매장량 중 상당 부분이 향후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총량을 제한하는 시나리오하에서는 “수익화될 수 없는(unburnable) 자산”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Carney, 2015). 이른바 ‘좌초자산(stranded asset)’ 문제가 현실화될 경우, 관련 산업에 대한 대출과 투자의 부실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국 금융당국은 다양한 감독 및 공시 기준을 도입하고 있다. 2017년 TCFD(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의 기후정보 공시 권고안은 현재 영국, EU, 일본, 뉴질랜드 등에서 의무화되었으며, 2021년 출범한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이를 회계기준으로 통합해 전 세계적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영란은행은 세계 최초로 기후 시나리오에 기반한 금융안정 스트레스테스트(CBES)를 실시하였으며, 유럽중앙은행(ECB)은 2022년 유럽계 은행을 대상으로 기후리스크 대응역량, 자산 익스포저, 시나리오별 손실규모 등을 평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다수 은행이 기후데이터 부족, 경영진 인식 미흡 등의 문제로 실질적인 대응 역량이 낮다는 점이 드러났으며, ECB는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기후리스크 관리체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ECB 2022).2) 국제결제은행(BIS)은 2020년 보고서에서 기후변화가 전통적 리스크 모델로는 예측이 어려운 “그린 스완(Green Swan)”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며, 중앙은행과 감독당국이 시나리오 기반의 비정형적 리스크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BIS, 2020).3)
일부 예금보험기구 또한 금융권의 기후리스크를 반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 예금보험공사는 기금운용 시 기후요인을 고려하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은행들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에 따라 예금보험료를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은 2021년 금융감독원이 『기후리스크 관리 지침서』를 발간하여 금융회사의 자율적인 기후리스크 관리체계 구축을 유도하였다. 금융위원회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시의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 중이며, 예금보험공사 또한 2025년부터 예금보험료 산정에 ESG 요소를 반영하기로 하였다. 이는 기후 리스크 관리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할 수 있도록 보험료율 제도를 개편한 것이다. 특히 환경 부문에서는 금융회사 이사회의 기후리스크 관리 여부, 중장기 로드맵 수립, 스트레스 테스트 이행 여부 등을 평가 요소로 삼았다(한경 ESG, 2025).4)
기후변화는 금융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는 기후요인을 신용 및 시장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에 통합할 필요가 있으며, 금융당국은 기후정보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스트레스테스트 등 정량적 평가 도구의 정례화를 추진해야 한다. 예금보험제도 또한 기후취약 금융회사에 대한 사전 경보체계를 마련하고, 보험료 산정 시 기후요인을 반영한 차등 적용을 통해 시스템 안정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2) ECB (2022). Climate Risk Stress Test – ECB Banking Supervision
3) BIS (2020). The Green Swan: Central Banking and Financial Stability in the Age of Climate Change.
4) 한경ESG (2025). 기후리스크, 보험료에 반영…미래 잠재적 위험에 대응. 4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