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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 최대 규모의 공원

새로운 문화를 만나 나를 채우는 시간
벨기에 브뤼셀 SRB 파견 근무기

인사지원부 이승연 선임조사역

오래된 도시를 걸어 출퇴근하다

저는 지난해 7월부터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 단일정리위원회(SRB: Single Resolution Board)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습니다. SRB는 유럽 내 주요 은행들의 부실에 대비한 정리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위기 상황 발생 시 각국 정리당국과 협력하여 이를 실행하는 기관입니다. 이곳에서 스페인계 대형은행 두 곳과 CCP(중앙청산소)에 대한 정리계획 수립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으며, 유럽 각국 정리당국과의 회의체 운영 및 국제협력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브뤼셀은 유럽연합의 행정 중심지이자 벨기에의 수도로, 도시 규모는 서울의 1/20로 크지 않지만 다양한 국제기구가 밀집해 있어 유럽 정치·경제의 심장부라 할 수 있습니다. 출퇴근은 도보 또는 버스를 이용합니다. 걸으면 35분, 버스는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오래된 도시 특성상 골목이 좁고 돌길이 많아 교통보다는 걷는 이동이 일상화되어 있으며, 날씨를 잘 예측해 가며 움직이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 되었습니다.
SRB는 유연근무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주 3회 오전 9시 15분부터 약 1시간 부서회의가 있어 대부분 9시쯤 출근하여 6시경 퇴근하는 분위기입니다. 회의가 많아 업무 시간의 절반가량이 문서 작업, 나머지 절반은 회의로 채워지는데요. SRB는 21개국 정리당국을 대표해 각국 당국, 유럽중앙은행, 중앙은행, 유럽연합 집행위, CCP 정리당국, ESMA 등 다양한 기관과 실시간 소통해야 하기에 헤드셋을 끼고 일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EU 기관 공동 프랑스어 강좌에도 참여하고 있어 언어 학습과 더불어 타 기관 소속 동료들과의 교류 기회를 넓히고 있습니다.

유럽 각국 정리당국과의 회의체 운영

새로운 문화를 체득하는 과정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은 가능한 한 알차게 보내려 노력합니다. 브뤼셀은 대부분의 상점이 평일 저녁 7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휴무이기 때문에 평일 저녁에는 장보기를 미리 계획하고, 틈틈이 프랑스어 수업이나 운동으로 일상을 채웁니다. 온라인으로 수강 중인 프랑스어 수업은 EU 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강좌로, 다른 유럽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소중한 창구가 되기도 했습니다. 수업 후에는 간단한 인사와 근황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브뤼셀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합니다. 봄에는 일 년 중 단 3주만 개방되는 벨기에 왕립 식물원(royal greenhouse)에 방문해 벨기에의 정원을 거닐며 여유를 느꼈고, 부활절 즈음에는 유명 초콜릿 장인들이 참가한 초콜릿 아트 대회를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브뤼셀 최대 규모의 공원에서 열린 중세시대 축제에 다녀왔는데, 중세 복장을 갖춘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축제 현장에서 한 컷

음식과 문화는 브뤼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가의 한 부분입니다. 외식 가격이 비싼 편이라 점심은 주로 도시락을 싸가지만, 약속이 있는 날에는 피자 전문점을 즐겨 찾습니다. SRB 내에는 이탈리아 출신 직원이 전체의 18%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고 브뤼셀에도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많아, 이탈리아 음식의 수준이 꽤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또한 브뤼셀은 프랑스어권이기 때문에 아프리카계 이민자도 많아 가끔 아프리카 음식점에 가기도 합니다.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는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입맛에 맞는 요리가 많아 새로운 미식 경험을 쌓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 내에서도 고향에 다녀오면 고향 특산품을 가져와 나누어 먹고, 생일이면 생일자가 빵이나 케이크를 준비해 동료들과 나누는 문화가 있어 작은 축제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한국에서 가져간 미니 약과와 맛밤은 예상치 못한 인기를 끌어 다른 부서 직원들까지 찾아와 나누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가끔은 동료들의 초대로 집에 방문해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며 하루를 보내는 일도 있는데 덕분에 보다 깊은 인간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근무는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다른 문화를 체득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SRB의 업무 방식은 매우 수평적이고 투명합니다. 회의에서는 직급에 상관없이 격의 없는 의견이 적극적으로 오가는데요, 초기에는 다소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따뜻한 동료들의 배려와 협력 속에서 이제는 주요 국제회의에 SRB 대표로 참석할 만큼 신뢰도 얻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브뤼셀에서의 하루하루는 마치 조용한 수업과도 같습니다. 업무에서도, 일상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매일 작지만 분명한 배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들이 앞으로 제 업무와 삶의 지평을 더욱 넓혀주는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동료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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