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거짓말이 있다. 바로 라면을 끓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친구에게 “하나 더 끓일까?”라고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 “아니, 난 한 입만 먹을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준 라면이라 하지 않았던가. 한 입만 먹으려 했던 사람도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다. 라면이 뭐길래, 20년 우정도 금이 가게 만든다. 라면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쫄깃쫄깃 오동 통통 ○○ ○○○”,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 ○○○”, “일요일은 내가 ○○○○ 요리사.” 라면하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CM송이 여럿 있을 정도로, 라면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저렴한 가격과 간편한 조리법 덕분에 한 끼 식사로 가능하고, 짜장라면, 볶음라면, 비빔면 등 다양한 레시피로 활용할 수 있다. 스프는 국물 요리의 만능 치트키로, 면사리는 여러 요리에 활용 가능하다. 그야말로 매력 넘치는 라면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중국이나 일본식 ‘라멘’이 아닌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인스턴트 봉지라면’은 1958년 일본의 모모후쿠 엔도가 최초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어떠한 계기로 들어왔을까? 때는 한국전쟁 이후 식량난에 허덕이던 1961년, 보험회사의 사장이었던 전중윤 씨는 어느 날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죽’을 사러 깡통을 들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았다. 꿀꿀이죽은 당시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을 끓여 만든 것으로 ‘유엔탕’이라고도 불렸는데, 담배꽁초나 씹다 버린 껌, 깨진 단추 등이 나올 정도로 영양과 위생 면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꿀꿀이죽을 먹어본 전중윤 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고 국민이 당장 먹을 게 없어 이런 것을 먹는데 지금 보험이 대수인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된다. 이때 머릿속에 떠오른 음식이 바로 일본 연수시절에 보았던 봉지라면이었다. 전중윤 씨는 그 길로 보험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 묘조식품에서 라면 제조기술을 전수받는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시행착오 끝에 1963년 라면 제조에 성공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라면의 시초인 삼양라면이다. 당시 라면 한 봉지의 가격은 10원이었다.
©삼양식품
세계라면협회(WINA)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라면 소비량은 총 1,200억 개에 달한다. 한국은 약 40억 개로 중국(422억 개), 인도네시아(145억 개), 인도(86억 개) 등에 이어 8번째의 소비량을 기록했는데, 1인당 연간 소비량으로 계산할 경우 평균 78개로 베트남(83개)에 이어 전 세계 2위를 차지하였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10월 말 기준, 한국 라면 수출액은 약 10억 2,000만 달러로, 2023년보다 약 30% 증가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2024년 11월 초, 관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라면을 가장 많이 수입한 국가는 중국으로, 수출액은 2억 1,500만 달러에 달했다. 이어 미국(1억 8,000만 달러)과 네덜란드(8,000만 달러)가 주요 수입국으로 집계되었다. 특히 삼양라면의 ‘불닭볶음면’이 매운맛을 선호하는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으며, 농심의 ‘신라면’의 인기도 꾸준하다. 특히, ‘신라면 블랙’은 2020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라면’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라면 면은 밀가루와 물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기계로 뽑아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휘어지게 된다. 이는 제면기의 속도와 면을 받는 기계의 속도 차이 때문이다. 꼬불꼬불한 면발 가닥은 100℃ 이상의 스팀 기계를 지나며 익고, 이후 150℃ 기름에서 한 번 더 튀겨낸다. 두 번의 익힘 과정은 면의 식감을 쫄깃하게 하고, 국물과 양념을 잘 흡수하도록 만든다. 또 직선인 면발보다 젓가락을 사용해 집어 들기도 편하게 된다.
면발을 꼬불꼬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포장과 부서짐 방지이다. 이렇게 꼬불꼬불한 형태로 면을 만들면 포장지 안에 더 많은 면발을 효율적으로 담을 수 있으며, 면발이 부서지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라면 한 봉지에는 약 100여 가닥의 면발이 들어가며, 한 가닥의 길이는 대체로 40cm 정도 된다.
봉지라면은 사각형 면 외에 원형 면이 있다. 1963년 삼양라면 출시 후, 1982년 너구리라면이 등장하기까지 라면 면은 모두 사각형이었다. 그러나 원형 냄비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어지자, 농심은 최초로 냄비에 딱 맞는 원형 면을 개발했다. 원형 면은 사각형 면과 달리 모서리가 잘리지 않아 냄비 안에서 고르게 익히기 좋고, 운송과 포장 과정에서 부서짐이 줄어들어 생산 효율성도 좋아졌다.
그렇다면 면 모양에 따라 맛 차이가 있을까? 사각형 면은 스팀 처리 후 바로 사각형 용기에 튀겨지며, 이 과정에서 면에 전분이 남아 쫄깃한 식감을 준다. 반면, 원형 면은 전분을 씻어낸 후 원형 용기에 담아 튀긴다. 이로 인해 원형 면은 전분이 제거되어 더 부드럽고 매끄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제조 과정에서 면의 특징에 맞춰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이론적으로는 물이 끓기 전 스프를 먼저 넣으면 염분 때문에 끓는점이 올라 3~4℃ 정도 높은 상태로 면을 끓일 수 있는데, 이 경우 면의 전분 구조가 덜 풀려 더 쫄깃해진다. 하지만 한 라면 업체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이론과는 달리 이런 방법으로 실제로 면이 특별히 더 쫄깃해지는 효과는 없다고 하였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물이 끓는 상태에서 스프를 면보다 먼저 넣는 것인데, 순간 끓어오름 현상 때문에 화상의 위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스프의 맛과 향이 급격히 날아가 버릴 수 있다. 따라서 면을 먼저 넣고, 면이 익은 후 스프와 후레이크를 넣는 것이 더 안전하고도 맛있게 라면을 즐기는 방법이다.
라면을 더욱 맛있으면서도 건강하게 즐기려면 신김치, 달걀, 양파, 양배추 등을 곁들이면 좋다. 숙성된 신김치는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라면의 감칠맛을 극대화하고 식이섬유, 유산균, 비타민 등 라면의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준다. 하지만 둘 다 염분이 많기 때문에 스프의 양을 줄이는 것이 좋다. 달걀은 단백질과 철분, 비타민이 풍부해 고소한 맛을 더해주며, 특히 매운 라면과 잘 맞는다. 달걀을 먼저 풀어서 끓는 라면에 넣어주면 특유의 비린맛도 줄일 수 있다. 양파와 양배추는 칼륨이 많아 나트륨의 체외 배출을 도와주며, 특히 양파는 혈액 속의 불필요한 지방과 나쁜 콜레스테롤을 녹이는 케르세틴이 풍부하다. 라면을 먹은 후 입가심으로 콜라를 먹는다면 인산 성분이 칼슘의 체외 배출을 촉진하게 되니, 콜라 대신 우유를 마시면 라면의 매운 맛을 잡으면서도 칼슘을 보충할 수 있다.
흔히 지역 먹거리 축제라고 하면 벌교 꼬막축제, 임실 치즈축제, 금산 인삼축제와 같이 대개 그 지역 특산물이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전국 어느 마트에 가도 동일한 가격과 균질의 상품으로 만날 수 있는 봉지라면으로 야심차게 축제를 여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 바로 경북 구미시다. 인스턴트식품답게 축제도 공업 도시에서 열린다. 하루 생산량만 500만 개, 신라면 생산량의 75%를 담당하는 국내 최대의 라면공장(농심)이 바로 구미에 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하는 구미 라면축제는 구미역 역전로에서 개최되었다. 축제 첫날인 11월 1일, 라면축제의 생생한 현장을 담기 위해 예보 크리에이터 직원들이 나섰다. 구미역에서는 대한민국 라면봉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전시회에는 라면 봉지 수집가로 유명한 거제도의 이성철 씨가 1980년대부터 수집한 300여 개의 라면봉지가 전시되어 있었다.
크리에이터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갓 튀긴 라면’ 판매 부스였다. 신라면, 짜파게티 등 인기 라면 5종을 판매하는 이곳에서 크리에이터들은 참지 못하고, 부스 한켠에 비치된 라면 조리기로 달려가 신라면 봉지를 뜯었다. 보글보글 끓어가는 라면을 보며 한강 라면이 부럽지 않다고 감탄했다. 뚝딱 한그릇을 해치운 뒤 “한봉지 더”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봉지 하나를 더 뜯었다. 갓튀긴 라면의 백미는 생라면이라더니, 과연 그 바삭바삭한 식감이 단연코 일품이다. 라면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레시피에 있다. 이번 축제에서는 라면에 진심인 전국 각지의 고수들이 다양한 라면 요리를 선보였다. 칠리라면타코, 한우곱창스지라면, 꽁냥꽁냥앗싸가오리라면 등 독특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19개의 라면요리가 관람객들을 기다렸다. 크리에이터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최애 메뉴는 바로 브랏부어스트짜장라면이었다. 라면을 계속 먹다 보니 입에 물린 것 같았지만, 짜장라면 한입에 혀는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 위에 올려진 소시지와 짜장의 궁합도 완벽했다. 축제 기간 가장 많이 팔린 메뉴는 ‘치즈돈까스라볶이’였다. 대중적인 재료들의 조합 덕분에 많은 사람의 선택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라면공작소’에서는 나만의 라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포장지를 스티커로 꾸미고, 면사리와 원하는 스프, 토핑을 담아 밀봉하면 나만의 라면봉지가 완성된다. 현장에서 먹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배가 부른 이들에게는 집에 가져가서 언제든지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지역마다 먹거리 축제가 늘어나고 있지만, 바가지 요금이나 행사진행 미숙 등으로 부정적인 인식도 늘고 있다. 하지만 구미 라면축제는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과 다양한 메뉴로 관람객들의 만족을 얻었다. 갓튀긴 라면조차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저렴하게 판매되었고, 많은 진행요원들이 적절한 위치에서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었는지, 올해 축제에는 17만 명이 방문하며, 작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를 기록했다. 갓튀긴 라면은 작년보다 5배 많은 25만 개가 판매되었다.
구미 라면축제는 지역과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되는 축제다. 내년에는 라면 공장 견학 프로그램도 고려 중이라, 갓 튀긴 라면의 진짜 맛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색다른 축제를 찾고 있다면, 구미의 라면축제를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