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성택 매일경제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우리나라 경제에 저출산 및 고령화라는 중대한 문제가 닥쳐오고 있다. 이는 단지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재정이나 소비 트렌드 등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인구의 점진적 변화는 우리에게 경제적 현상을 분명하게 식별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 저출산에 대한 경종이 반복적으로 울리다 보니 점점 둔감해지는 측면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령화는 어디까지 진행되었을까? 2025년 11월 현재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 거주자의 21.1% 수준인데, 이는 2015년보다 8%p 상승한 값이다. 같은 기간 19세 미만 인구 비중은 20.1%에서 14.9%로 5%p 감소했다. 전체 인구는 2021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고, 경제활동인구는 이미 2017년부터 감소추세에 있다. 최소 2명을 넘어야 인구규모가 유지됨을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으로 바닥을 찍고 겨우 반전하여 올해 0.8명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는 ‘관성’이 높은 변수로 그 값이 급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의 저출산과 고령화는 요행한 해결책은 불가능한 주어진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난 수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경제 문제를 연구할 때 인구가 감소할 것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나라별로 찾아온 고도성장기는 가계를 부유하게 만들었고, 인구가 많이 증가하는 ‘베이비 붐 세대’를 경험해 왔다. 대표적인 경제 성장 모형인 솔로우 모형은 양(+)의 인구증가율을 전제로 하여 해석됐는데, 이에 따르면 인구의 감소는 근로자 1인당 이용 가능한 자본재의 양이 증가해 오히려 1인당 GDP는 상승한다는 다소 납득하기 힘든 결론이 나온다.
또한 중첩세대모형(Overlapping Generation model)은 인구가 증가하는 경제에서 정부가 직접 세대 간의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최선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데, 이는 부과식(Pay-As-You-Go) 연금제도의 이론적 기반에 해당했다. 개인들의 분권화된 선택은 사회적 최적 수준보다 낮은 저축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정부가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들은 50~60년대에 주로 시행되었고, 연구자들은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구감소 상황에서는 부과식 연금제도는 적립식으로의 전환이 불충분할 경우 그만큼 조세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고령층에 대한 의료비 지출 증가는 정부의 의무적 재정지출 증가로 이어져 재정정책 운신의 폭은 더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정부 부채의 누적을 가중시킬 것이며 미래세대에 점점 더 많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는 금융과 예금 패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경제학자 모딜리아니(Franco Modigliani)의 생애주기가설에 따르면 개인들은 평생에 걸친 소득을 예상하고 이를 균등하게 소비하고자 한다(소비평탄화). 개인들은 청년기~장년기에 걸쳐 소비수준을 소득 수준보다 낮게 유지함으로써 부(wealth)를 축적하고, 은퇴 이후부터는 부를 지출하며 생활한다. 출생인구 감소로 연령별 인구 분포에서 청년층과 장년층이 줄어들 경우 상대적으로 부를 인출하는 중인 고령층의 비중이 높아져 경제 전체 부의 총량에 감소효과가 발생한다.
한편, 고연령층은 소득과 근로능력의 감소로 인해 자산손실에 심대한 위협을 느끼며 이에 따라 높은 위험회피성향을 보인다. 따라서 하락위험이 낮은 자산을 주로 보유하고 금융자산 내에서도 안전성 높은 예적금이나 연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상반된 효과들을 종합하면 고령화에 따른 예금 규모는 그 추세를 일방적으로 단언하기 힘들다. 다만 인구 감소로 인한 경제의 활력 저하 및 미래의 조세부담은 해외 투자 경향을 촉진해 장기적인 국내 예적금 규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실제 통계를 살펴보면 어떨까? 국내 예금은행의 총예금액은 2004년, 2013년, 2023년 경의 일시적 정체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으며, 인구 감소가 시작된 최근 들어서도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여기서 물가상승분을 제외한 실질총예금을 살펴보면 2021년부터 정체되고 있다. 그러나 매우 완만한 인구변화에 비교할 때 최근 수년간의 실질총예금 정체는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다. 과거의 패턴을 볼 때 거시경제적 상황과 그에 따른 가계 대출 감소와 큰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령별 예금 보유 경향을 확인하고자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살펴보았다. 국내 가구들의 금융자산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가구주 나이가 40대 이하인 그룹은 40% 미만이지만 50대, 60대 이상인 그룹에서 금융자산 중 예적금 비중이 43%, 62%로 확연히 높게 나타났다.
한편, 동일한 통계의 2017년 자료와 비교하면 전 연령대에서 예적금 비중이 2.3~8.5%p가량 상승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중뿐만 아니라 평균 규모도 34%가량 증가했다. 최근 자산 가격 상승기에 가계들은 펀드나 직접 투자 비중을 확대한 것으로 보이는데, 투자금을 예금에서 인출하는 대신 주로 저축성·보장성 보험을 줄인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는 금융 트렌드 측면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는 ‘시니어금융’을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로 인식하고 있는데, 금융자산을 더 많이 보유했으며 요양과 상속이라는 특수한 수요를 가진 고객집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한 업계에서는 모바일 금융에 익숙하고 건강관리에 노력하는 현재의 장년층이 ‘액티브 시니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의 고연령층은 금융 이해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이해력 측면에서도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이들은 핀테크나 모바일뱅킹보다 창구나 폰뱅킹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고, 금융 정보 인지 능력이 낮아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계좌에 자금을 보유하고도 이를 인지하지 못해 사용하지 않는 휴면예금이 한 가지 사례다. 최근 공개된 휴면예금 규모는 5년간 2.5조 원 수준으로, 그중 65세 이상이 30%에 해당했다. 최종 거래일부터 5년간 찾지 않은 계좌는 휴면예금으로 분류되는데, 이는 별도 금융기관(서민금융진흥원)에 신청해야 찾을 수 있다. 휴면예금 처리하기 전 한 차례 정도만 안내가 가기 때문에 고령 예금주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휴면예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또 고령층은 금융사고에도 주된 피해계층으로 나타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공개한 2023년 보이스피싱 피해현황에 따르면 전체 피해액 중 60대 이상의 비중이 36.4%였다. 고령 예금 보유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더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국내 예금 규모는 미래에 예상되는 부정적인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당장 감소추세로 돌아서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유소년 인구들이 독립하는 20~30년 이후에는 경제규모 축소가 분명해질 것이며, 금융과 예금업도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