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임성택 매일경제 경제경영연구소 연구원
최근 국내 증시는 AI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하지만 상승장을 온전히 누린 투자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예측이 어려운 시장에서 투자자는 무엇을 믿고 자산을 배분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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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증시가 활황이 되면서 주식투자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남들 모두 부자 되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기분에 증권사 앱을 설치하는 사람이 늘면서 1년 새 신규 개설된
계좌만 1,600만 개를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주식투자를 해온 사람들 중에는 이번 상승장에 크게 이득 본 사람이 많지 않다. 최근 증시상승이 주로 AI 붐에 따른 반도체
급등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반도체 업계의 불황으로 무역수지 적자까지 보던 상황에서 이렇게 상황이 급변할 것은 예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나름 주식판에서 오래 경험을 쌓은 투자자들에 비해, 우연히 반도체주에 장기간 묻어놓은 투자자들은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 이러다 보니 ‘무지성 반도체 투자’가 유행이다. 분산투자나
분할매수, 손절/익절 라인 형성 등 오래된 투자 격언들은 이제 쓸모없어진 것일까? 그중 독보적으로 투자성과를 올렸던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마저도 큰 투자수익을
위해서는 소수의 종목에 집중투자를 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문제는 투자종목을 어떻게 고르느냐이다. 반도체 특수 다음의 주인공은 누가 될 것인가? 그것을 지금 예측한다는 것은 도박과도 같다.
워렌 버핏으로 유명한 가치투자 방법은 어떨까? 가치투자자들은 기업의 미래 현금 창출능력을 면밀히 조사하여 현재 저평가 상태인지 가늠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의 전제조건은
투자자가 기업의 가치를 꿰뚫어 볼 능력을 가져야 하고 해당 기업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에 대한 공부 대신 주가 차트를 분석하는 것은 어떨까? 필시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지만, 학계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방법들을 이용해보아도 특별히 우수한 투자법을 발견하지
못했다. 즉, 과거 패턴으로는 미래 주가를 예상할 수 없었다. 사무엘슨(Paul Samuelson)은 주식시장이 합리적일 경우 미래 주가는 예측할 수 없는 무작위보행(random
walk)을 따른다는 점을 보였으며, 유진 파마(Eugene Fama)는 ‘이미 모든 정보는 현재 주가에 반영되어 있어 (투자자들이 예견하기 힘든) 새로운 정보만이 주가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투자에 참고할 만한 기법은 전혀 없는 것일까?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오랜 격언은 우리에게 분산투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다. 마코위츠(Harry Markowitz)는 분산투자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기념비적인 연구를
수행했는데, 그는 기업의 수익성 외에도 변동성 부분에 관심을 집중했다.
마코위츠는 세로축이 자산의 기대수익률을, 가로축은 변동성(수익률의 표준편차)을 나타내는 평면을 고안하여 두 가지 척도로 위험자산의 특징을 나타냈다.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기대수익이
높은 자산을 선호하고 변동성(위험)이 높을 경우 반대이기 때문에, 평면상에서 좌측 상단에 있을수록 바람직한 투자자산인 셈이다.
마코위츠는 여기서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두 주식을 이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경우, 수익률은 두 주식의 평균이 된다. 그러나 변동성은 평균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만일 서로
수익이 완전히 반대로 움직이는 주식이 있다면 두 가지를 모두 투자 포트폴리오에 담음으로써 완벽히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 정도로 완벽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경우는 없지만, 상관관계가 1보다 작기만 하면 분산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다.
만약 자산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위험자산으로 분산투자를 할 경우, 개별 주식보다 동일한 변동성 하에서 기대수익이 더 높은 포트폴리오를 찾을 수 있는데, 이런 포트폴리오들을 연결하면
왼쪽으로 볼록한 쌍곡선의 형태를 갖는다. 이것이 효율적 투자선(Efficient Frontier)으로, 투자자는 이 선상에서 자신의 구미에 맞는 위험과 기대수익의 조합을 선택하여
최선의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토빈(James Tobin)과 샤프(William Sharpe) 등의 후속 연구를 통해 자본자산가격결정이론(CAPM)으로 발전한다. 투자자는 위험자산 말고도
무위험자산(국채 등 확정된 수익을 주는 자산)에 투자할 수 있다. 투자자가 무위험자산과 효율적 투자선 상의 위험자산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려 할 경우, 최적의 위험자산은 딱 한
가지가 존재한다. 그 최적의 포트폴리오는 시장 포트폴리오(Market Portfolio)가 되며, 이는 주식시장의 모든 주식을 시장 전체 시가총액 대비 해당 기업의 시가총액 비율로
투자함으로써 구성 가능하다. 즉, 시장 지수에 투자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분산투자는 직관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개별 기업 주식에 투자할 경우, 해당 기업의 고유한 위험(공장 화재 사고, 경영자의 배임, 브랜드 평판 하락 등)에 노출된다.
그러나 다양한 주식들로 분산투자를 할 경우, 모든 기업에서 한꺼번에 부정적인 뉴스가 발생할 확률은 0%에 가깝기 때문에 기업 고유 위험 부분은 제거할 수 있다. 따라서 한 종목에만
‘올인’하는 경우는 기대수익으로 보상되지 못하는 쓸데없는 위험을 짊어지는 것과 같다.
‘시장 전체에 투자하라’로 요약될 수 있는 위의 결과를 대중화한 것은 존 보글(John C. Bogle)이었다. 그는 CAPM을 신봉한 것은 아니었지만, 다년간의 투자 경험을 통해
장기적으로 시장 지수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펀드가 없음을 지적했다.
존 보글의 주장은 어차피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면, 차라리 ‘무지성’으로 시장 포트폴리오에 투자하고 펀드 수수료를 아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 투자자가 수백~수천
개의 주식을 분산투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지수투자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인덱스 펀드를 대중화함으로써 자신의 지론을 현실화했다.
상장지수펀드(Exchange Traded Fund, 이하 ETF)의 등장은 지수 투자에 대한 접근성을 더욱 용이하게 했다. ETF는 ‘기초자산 꾸러미’에 대한 지분을 주식시장에
상장한 것이기 때문에 마치 개별주식에 투자하듯 장중에 편리하게 매매할 수 있다. ETF는 기존에 개인이 투자하기 힘들었던 해외 증시나 금 등 원자재에 대한 투자 지평을 넓혀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기존에는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충격이 발생할 경우 분산투자로 헤지할 수 없는 시장 위험에 해당했지만, 해외 투자가 가능해질 경우 이러한 국가 단위의 리스크도
어느 정도 해소 가능한 위험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존 보글은 ETF의 범람이 인덱스 투자 측면에서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덱스 투자는 시장 전체에 고루 분산하여 장기간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ETF는
장중에서도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게 되면서 단타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 등 오히려 인덱스 투자 철학과 배치되는 상품들도 다수 존재한다. 따라서
지수형 ETF(passive ETF)에서 기대되는 안정성을 파생상품의 성격을 띤 ETF에 기대하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음(-)의 복리 효과로 인해 횡보장에서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ETF의 거래가격이 펀드의 순자산가치(NAV)와 괴리가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요약하자면 전업투자자가 아닌 이상 우리는 종목을 탐색하거나 매도·매수 타이밍을 잡으려고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패시브 ETF와 무위험자산 사이에서 비중을 선택한 후 잠시 투자
열풍에서 몇 발자국 물러난 다음 본업에서의 생산활동에 전념하는 것이 현명한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 명심할 점은, 우리가 심리적 요인에 의해 비합리적인 투자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행동재무학자들은 개인 투자자가 빠지기 쉬운 여러 요인을 지적하는데, 대표적으로 자신의 투자 능력에 대한 과신을 들 수 있다. 그 결과 빈번한 매매와 소수 종목 집중투자가 심해지고
점점 장기 인덱스 투자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들의 군집행동과 최근성 편향은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낸 종목을 더욱 과잉 매수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자기실현적으로 버블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개인 투자자들은 나의 포트폴리오가 당초의 계획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혹시 그런 판단에 자기합리화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수시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